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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28)이윤선/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해마다 명절이 되면 어머니는 '밀백기'를 만드셨다. 추석과 설은 물론 유두 백중에도 빠짐없이 준비하셨다. 설날 필수적으로 장만하는 것이 조청(엿)이고 추석날 필수로 준비하는 것이 송편이라면 모든 명절을 통틀어 준비하는 음식이 '밀백기'다. 송편도 각각의 명절마다 준비하던 것이었지만 어느 시기부턴가 추석 음식으로 정착되었다는 점, 몇 차례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설날 가래떡을 찍어 먹기 위해 조청을 준비한다는 점도 지난 칼럼에서 소개해두었다. 그렇다면 왜 명절에 밀백기를 해야만 했을까? '밀+백기'에서 '밀'은 명절을, '백기'는 두부조림 혹은 두부탕을 말한다. 진도, 해남 등 남도 일부 지역에서 명절을 '밀'이라 한다. '밀'이란 명칭의 분포권은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잔존지역보다 훨씬 넓었을 것이다. <전남방언사전>을 쓴 이기갑은 '밀'이 '명일'에서 온 말일 수 있다 한다. '명일(名日)'은 '명절'이다. 지금으로 치면 '국경일'의 총칭이다. '일'이 탈락하면서 '명'이 '밀'로 변화되었다. 백기라 호명하는 두부조림은 고춧가루 등의 양념을 치지 않는다. 돼지고기를 넣기는 하지만 두부볶음 혹은 두부국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뚜부백기'라고도 한다. '백기'는 어디서 온 말일까? 감옥 출소 후 먹는 두부의 출처 콩밥 먹는다는 말이 있다. 징역살이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일제시대에는 전쟁물자 동원을 위한 공출제도 등으로 인해 농촌생활이 극도로 궁핍했다. 보리밥은커녕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어려웠다. 따라서 당시 만주지방에서 생산되던 값싼 콩을 대량으로 들여와 콩밥을 해먹인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가? 합리적인 추론이긴 하나 2% 부족해 보인다. 주목할 것은 감옥을 출소할 때 너나없이 흰두부를 입에 가득 넣어 먹인다는 점이다. 오래된 전통일까? 근대에 생긴 풍속일까? 출소자에게 두부를 먹이는 것은 흰색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의미, 정화, 씻김 등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흰두부처럼 정화하고 새사람이 되라는 의미로도 풀이한다. 또 이런 해석도 있다. 교도소에서 콩밥을 많이 먹었으니 다시는 감옥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먹인다는 것이다. 두부가 콩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치라나. 감옥에서 영양공급이 불충분했을 것이므로 영양소 많은 두부를 먹인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 설은 콩밥이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라는 설에 배치된다. 두부에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필수 아미노산, 뇌세포의 대사 기능 촉진, 불안감을 해소하는 가바(Gaba) 등이 들어 있다는 점에서 영양식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식단이 아니라는 뜻으로 들린다. 중국 산시성(山西省) 츠바이치((吃白起·흘백기) 전통 명절에 밀백기를 만드는 곳을 추적하였더니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의 한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산시성에 현존하는 백기육(白起肉)이란 흰두부 요리다. 고기 육(肉)자가 들어가 있으니 고기요리일까? 아니다. 순두부탕이라고 할만한 구성이다. 진도와 남해안 지역에서 지금도 명절마다 만들어서 먹는 밀백기와 많이 닮았다. 고기도 넣지 않고 갖은양념도 넣지 않고 그저 흰두부 중심으로 끓인 음식이다. 아니, 무엇보다 백기라는 이름이 같다. 산시성에서는 이 요리를 만들어 먹으면서 '츠바이치(吃白起·흘백기)'라 한다. '백기를 삶아 먹는다'는 뜻이다. '백기'는 사람 이름이다. 전국시대 때 얘기다. 진(秦)나라 전쟁의 신으로 불리는 백기(白起)가 지금의 산시성 가오핑(高平)시에서 조(趙)나라를 대적한다. 마침내 조나라 군사가 투항했는데 '반란이 우려된다'며 스스로 구덩이를 파게 하고 그 속에 군사들을 참살했다. 한반도 현대사에 산견되는 제주 4.3이며 여순이며 민족동란에 이르는 처형의 모습들이 눈에 어른거린다. 조나라로 돌려 보낸 어린이 240명 외 45만 명을 이같은 방식으로 갱살(坑殺, 구덩이에 산채로 파묻음)했다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사기 열전에는 이를 '조나라 사람들이 벌벌 떨었다(趙人大震)'고 보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백기는 중국 역사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잔혹한 처형 혹은 살인자로 낙인찍혀 있다. 산시성 사람들이 백기육 즉 두부탕을 먹는 것은 원수의 뇌를 씹어먹듯 조상의 한을 되갚는다는 의미라 한다. 물론 조나라의 패배는 효성왕 조단(趙丹, 기원전 265~245)이 노장 염파를 전쟁에 쓰지 않고 돈을 써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방식으로 애송이 조괄(趙括)로 바꾸었기 때문이라 한다. 옹졸한 제왕이 무능한 장수를 등용했기에 40만 대군이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다. 어머니가 명절마다 만드시던 '밀백기'를 상고한다. 진도와 남도지역에 잔존하는 밀백기의 전통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남도지역과 지금의 산시성 곧 기원전 조나라와 어떤 특별한 관계라도 있단 말인가. 아니면 대(對)중국 문화교류의 풍속이 진도를 중심으로 한 남도지역에 잔존하고 있단 말인가. 아니면 우리 또한 어떤 원수의 뇌를 씹어먹듯 밀백기를 명절마다 만들어 먹었으며 이 행위를 통해 조상의 한을 되갚고 있기라도 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원수는 누구이며 우리의 조상은 어떤 패전 혹은 어떤 억압의 시대를 감내해왔단 말인가. 어쩌면 출소하면서 흰두부를 먹는 전통도 어떤 연관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라마다 지방마다 전통도 다르고 풍속도 다르다. 하지만 동아시아를 통틀어 유사한 전통과 풍속도 있다. 중국 산시성의 흘백기와 진도 등 남도 해안의 밀백기 풍속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생각해보는 추석이다. 두부의 역사 지역에 따라 더부, 둠비, 두위, 뒤비, 드비, 디비, 조패, 조푸, 조피, 조프 등으로 부른다. 언제부터 두부를 만들어 먹었을까? 심승구의 논문 '조선시대 조포사와 진관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두부가 전래 된 시기는 고려말이다. 이색의 <목은집>에, 과거를 치른 뒤 두부를 먹었다(1365년)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최덕경의 '대두의 기원과 장(醬, 젓갈, 간장, 된장)·시(豉, 메주) 및 두부(豆腐)의 보급에 대한 재검토'에 의하면 두부가 문헌 속에 등장하는 것은 중국의 오대(五代, 당과 송의 중간시대)다. 조포사(造泡寺)와의 연관은 두부를 '두포(豆泡)' 혹은 '포(泡)'라고 불렀다는 데서 찾는다. 이 사찰에서 나라 제사에 쓰는 두부를 만들었다. 능(陵, 임금의 무덤)이나 원소(園所, 왕세자의 무덤)에 속한 국가기관의 하나, '능침사' 또는 '능침조포사' 등으로 불렀다. 이외 관가에서 두부를 만들어 바치던 곳을 조포소라고 했다. 이들 연구에 의하면 16세기 이전 두부는 오늘날의 형태라기보다는 거의 순두부에 가까운 것이었다. 당시의 제사용 두부와 그 의미들을 상상해볼 수 있는 정보들이다. 이것으로 백기(白起)의 이름이 등장하는 기원전까지 두부가 소급될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아마 두부가 만들어진 이후 각색되거나 재구성된 신화 아닐까 싶다. 우리 어머니들이 명절마다 두부를 만드시던 까닭 또한 명절이 절기 제사였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기원에 관한 소급의 가부를 떠나 '밀백기' 혹은 '두부백기'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한중간의 문화 유사성이다. 또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출소자들에게 먹이는 흰두부는 죄의 씻음이나 정화, 나아가 거듭남의 의미(과거를 보고 나서 먹는 두부)가 담긴 풍속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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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서 '김치의 날' 행사, 현지인 김장 체험 프로그램 인기주남아프리카공화국한국문화원은 25일(현지시간) 현지인을 대상으로 김치를 소개하고 김장 체험을 하는 '김치의 날' 행사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날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 있는 문화원에서 남아공한인회와 함께 주최한 행사에는 현지인 50여 명이 참가해 김치와 김장 문화를 배우고 직접 김치를 담갔다. 김장 체험 이후에는 수육, 두부김치 등 한식 시식도 진행됐다. 이날 담근 김치는 한인회를 통해 주변 지역 공동체에 무료로 나눠줄 예정이라고 문화원 측은 덧붙였다. 행사에 참가한 브리오나 모요 씨는 "한식의 인기로 김치는 알고 있었지만 김장 문화는 처음 접했다"며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남아공 전통문화와도 닮은 점이 많아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김치의 날은 김치의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우리 정부가 2020년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김치 재료 11가지가 모여 22가지 이상의 건강 기능성 효능을 낸다는 의미를 담아 매년 11월 22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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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강덕이 할머니가 부른 '밀양아리랑'2023년 9월 11일부터 13일 사이, 한국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 김연갑(金練甲) 이사장과 대종교 원로 리창구(李昌九)께서 연변에 와서 나(리광평)를 찾았다. 김연갑께서는 이미 몇해 전에 두번이나 연변에 다녀와 연변음악가협회의 도움과 나의 도움으로 조선족의 유명한 음악가들이고 음악교육자들인 전화자(全花子), 안계린(安继麟), 김봉관(金凤官)등을 만나 중국조선족음악, 특히는 연변에서의 아리랑에 관한 연구성과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수집하였었다. 특히는 2013년 7월 21-22일에 오셨을 때는 1급 작곡가 안계린의 '장백산아리랑'에 관한 자료와 김봉관이 수집정리한 연변에서 불려졌던 '아리랑', '밀양아리랑' 등 자료들을 수집한 후 한국에 돌아가 여러가지 도경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소개함으로써 중국에서의 아리랑 음악에 대한 성과들을 전세계에 널리 홍보를 하였던 것이다. 그때 영화 ‘아리랑’ 연구가 기미양과 함께 오셨을 때도 나의 안내로 이곳 룡정시 지신진 명동학교의 졸업생이고 1926년 한국에서 처녀작 "아리랑” 을 발표하고 그후 한국 영화계의 선구자로 소문난 라운규(罗云奎) 예술가의 발자취를 따라 유서 깊은 룡정의 몇 곳을 답사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라운규가 조선 회령의 기차역 로동자들이 아리랑을 부르면서 일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아리랑' 창작에 몸을 바쳤다고 하던 저 두만강 건너 회령 기차역을 룡정시 삽합진 망강각에 올라 바라보았고, 또 명동학교 전시관에서 라운규를 소개한 전시품들을 살펴보았으며, 라운규네가 올랐던 선바위, 그리고 지난 세기 3,40년대에 아리랑극과 노래가 공연되였다던 룡정 성세극장 옛터도 답사하였던 것이다. 이번에 그는 10년만에 다시 연변에 왔다. 그런데 그때 만났던 안계린과 감봉호 음악가들이 이미 저 세상사람이 되였고 전화자 선생님도 외출한 상황이라 이전에 련락하였던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였단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아직 건강하게 활약하고 있기에 이번 걸음은 전부 나에 의거한다는 것이였다. 세월의 흐름은 그 누구도 어쩔수 없으니깐 오직 하루 하루를 의미있게 보내는 것만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봐야 하겠다. 나는 김연갑선생님과의 전화통화에 의해 연길시 연서가 35호에 자리잡은 한정호텔(汉庭酒店) 403실에 그들의 숙박을 잡아주었고, 11일 오후 2시에 공항에 도착하여 4시 반에야 입국수속을 마치고 출구로 나온 김연갑과 리창구를 반갑게 맞을 수 있었다. 호텔 수속을 마치자 김연갑은 전화자 선생님이 출국하였기에 만날 수 없고 안계린과 김봉관도 사망하셨기에 만날수 없어 몹시 서글프고 마음이 아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번 걸음에 연변조선족음악 더욱히는 아리랑 노래에 대한 연변의 연구성과들을 료해하고 이전에 연변에서 밀양아리랑이 불러졌다는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나한테 무슨 수가 없겠는가고 따지고 물었다. 그러자 나는 저녁 식사 시간에 연변문련원 부주석이였고 조선족음악가이며 중국조선족명인관 관장인 류영근(柳永根)한테 전화를 걸어 김연갑이 왔다고 알려주면서 중국조선족명인관을 참관시킬 수 없겠는가고 청을 하였다. 언녕부터 김연갑에 대해 알고 있는 류영근은 이는 우리 중국조선족음악을 세계에 홍보하는 좋은 기회라면서 래일 오전 10시에 연변대학 맞은켠 대학성1호 건물 8층 연변미술관 옆에 있는 중국조선족명인관을 찾아오라는 것이였다. 내가 이 기쁜 소식을 김연갑한테 전하자 그들은 너무 흥분되여 어쩔바를 몰라 하였다. 그러자 나는 지금의 안도현 명월진에 1938년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집단이민을 오셨던 강덕이란 할머니가 계신데 그를 만나면 밀양아리랑을 부르는 걸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김연갑은 래일 오전에 중국조선족명인관을 참관한 다음 즉각 안도현 명월구로 가서 강덕이할머님을 만나보자고 하였다. 김연갑은 그렇게 되면 이번 걸음의 목적을 이룰수 있을 것 같다며 나한테 감사하다는 인사를 거듭 올렸다. 나는 밤이 깊어 택시를 타고 룡정으로 돌아왔다. 9월 12일 내가 택시를 타고 오전 9시 10분에 한정호텔에 도착하니 그들은 언녕 1층 홀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시 안도현 명월진의 강덕이할머니에게 저들이 오늘 오후에 찾아가겠다고 전화를 하였다. 그러자 강덕이는 지금 자기는 허리가 아프면서 걷기가 힘들어 안도현중의병원에 입원하였다고 하였다. 내가 그러면 병원으로 직접 찾아가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오면 자기한테 전화를 하라는 것이였다. 9시 40분이 되자 우리는 걸어서 중국조선족명인관에 도착하였다. 중국조선족명인관 녀성관장이 저들을 반기면서 류관장께서 손님을 접대하다보니 약 반 시간 후에 오실거라면서 김연갑과 리창구한테 전시품들을 까근히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이 명인관에는 현재 연변조선족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허세록, 그리고 김성민, 정진옥, 박우, 동희철, 김남호, 허원식, 방룡철, 안계린, 안국민, 최연숙, 최삼명, 김봉호, 최창규, 김봉관, 박서성 등 16명의 연변조선족음악가의 사적들과 음악작품들, 그들을 소개하는 책들과 CD, 메달과 증서, 그들이 사용하던 악기, 실물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류영근께서 오시더니 김연갑 등과 뜨거운 악수를 나누시고 오신 것을 환영한다면서 16명 연변음악가들의 사적을 상세히 소개하여 주었다. 김연갑 선생은 이전에 자기는 여러 차례 연변에 다녀와 조선족음악에 대한 조사를 하였었는데, 그때는 이런 전시관이 없어 모진 애를 먹었단다. 그런데 오늘 이런 현대적인 전시관을 보니 몹시 격동된다면서 연변문화의 발전 성과를 만끽하게 되고 조선족 음악에 대한 깊이와 수준을 형상적이고도 예술적으로 실감하게 된다고 탄복을 금할줄 몰랐다. 특히 이 명인관에서 듣는 조선족음악은 이전에 자기들이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들이 풍부하고 다채로워 중국조선족음악에 대한 애착심이 더 생기고 또 리해를 더 깊이있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관람과 소개가 끝내자 류관장은 우리 일행를 데리고 동영상실에서 중국조선족명인관소개, 연변음악가소개에 관한 동영상들을 관람시켰다. 그러면서 류영근은 앞으로 여러 가지 도경을 거쳐 김연갑 선생에게 이런 자료들을 제공하여 주고 여러 면으로 교류를 하며 중국조선족음악을 세계에 널리 홍보하기에 힘쓰겠다고 말씀드렸다. 김연갑 선생은 류영근관장의 접대와 소개에 진심으로 되는 감사와 경의를 표하면서 이런 자료들을 잘 활용하여 전세계에 중국조선족음악을 잘 홍보하기에 최선을 다 하며 앞으로 많은 교류와 협작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하였다. 류영근 관장은 우리들에게 오찬을 마련하여 주었으며, 자신의 승용차로 우리들을 연길기차역 광장 장거리 뻐스역까지 모셔가서 안도로 갈수 있도록 편리를 마련하여 주었다. 나는 김연갑 선생, 리창구 선생과 함께 연길에서 안도로 달리는 버스를 타고 떠나 오후 2시 10분에 안도현 명월진에 도착한 후 택시를 잡아타고 안도현중의병원 409호 병실로 찾아가 강덕이 할머님을 만나게 되였다. 허리 통증으로 인하여 걷기가 힘들어 입원치료를 받는다는 강덕이 할머님은 몹시 허약해 보였다. 아래에 아리랑연구가 김연갑 선생이 강덕이 할머니와의 인터뷰 내용을 록음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김연갑: 할머님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고향엔 다녀가셨어요? 강덕이:우리 부모네는 한국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1938년도에 이곳 연길현 명월촌 도안구(오늘의 안도현 명월진 신툰촌)에 집단이주를 왔댔어요. 나는 그 이듬해인 1939년에 도안구 집단이주민 부락에서 태여났지요. 약 10년전에 우리 부부는 한국의 고향에 한번 놀러갔댔어요. 고향집이 있는 데로 가니까 우리 옛 집터에서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옛집은 이미 허물어졌더군요. 그래서 왜 집을 허물었는가고 물으니 새로운 주인이 이사를 오면서 그 집에 사람들이 들지 않으니 허물고 그 자리에 콩크리트 바닥을 하여 마당으로 쓰고 있다고 합데다. 그리고 바닥 옆에 창고를 짓고 거기에 우리 부모네가 쓰던 디딜방아랑 가대기랑과 낡은 가구들도 진렬하고 있었다. 김연갑: 그러면 할머니는 어릴 때 사셨던 집터 기억이 나세요? 강덕이: 나는 중국에서 태여났으니 나의 엄마의 말을 자꾸 들어 조끔 알고 있었지요. 나의 엄마는 우리집 대문앞에 대추나무 한 그루 심어 놓았는데 아이들이 채 익지 않은 대추를 따 먹는다고 야단을 쳤댔다고 말하셨지요. 그래 가보니 정말 그 대추나무 한그루가 그냥 있더군요. 나의 할아버와 할머니께서 일찍 사망하시다보니, 고모는 우리 아버지와 단둘이 서로 의지하면서 고달프게 살았대요. 우리 고모가 아버지를 키우셨대요. 그때는 장가를 가려면 밑며느리를 집에다 데려다 놓고 키워서 결혼을 시켰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15살인 우리 엄마를 집으로 데려왔대요. 그래서 고모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키워서 나이가 되니까 결혼을 시켰답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 고모네가 중국에 이주를 가게 되였대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두고는 갈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우리 고모는 아버지네를 데리고 중국에 집단이주를 오게 되었대요. 그때 고모는 중국으로 가려면 꼭 된장과 간장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더러 도가지에 된장과 간장을 각각 담아서 중국에 가져오게 했대요. 지금 그 도가지를 내가 보존하고있어요. 그것이 우리가 집단이주를 왔단 증거물이 아니겠어요? 우리 어머니는 고향에 있으면서 삼을 심어서 실을 내여 삼베를 짜서 집식구들의 옷을 해 입혔대요. 중국에 와서도 삼베를 짜야 옷을 지어입을 수 밖에 없으니 계속 삼을 심고 그걸 실로 내여 베틀에 앉아 삼베를 짰어요. 나도 어릴 때부터 엄마가 베를 짜는걸 도와서 실을 비비기도 하고 감기도 하였지요. 리광평: 이 분은 그때 부모님들이 가지고 왔던 독을 보관하고 있을뿐아니라 어머니께서 짜셨던 베천 쪼각들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외 여러 가지 물건들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강덕이: 그때 두부를 만들려면 콩물을 천으로 짜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엄마가 짠 베천으로 콩물을 짜는 주머니를 만들었지요. 지금 그 주머니를 보관하고 있어요. 김연갑: 참, 그 베천쪼각이라도 가지고 갔으면 좋겠는데요. 리광평: 그때 저 할머니께서 그 베천쪼각을 저한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저는 저도 가지고 싶지만은 이 천을 고이 잘 간직하였다가 이 마을 신툰촌력사전시관을 꾸릴때 전시하여야 제일 값이 있을거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김연갑: 그리고 할머니, 이전에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찾아와서 이런저런 조사도 하고 물어보기도 하지 않았어요? 강덕이: 그때 많이 왔지요. 한국에서도 오고 중국의 북경, 장춘,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왔댔어요. 그때 우리 마을은 전 연변에서 제일 처음 명명된 조선족민속마을이였거든요. 한번은 북경에서 온 도연(导演)이 우리 민속촌에 대한 촬영을 아주 상세하게 하였어요. 그러면서 아주 훌륭한 동영상을 만들겠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 도연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그만 차에서 중풍을 맞아 사망하였대요. 하여 그 좋은 자료들이 몽땅 없어지고 동영상도 만들지 못했거든요. 얼마나 아쉽던지! 지금은 년세 많은 분들이 다 사망되고 집단이주력사 이야기를 할만한 사람들이 없어요. 이젠 나 혼자만 남았어요. 김연갑: 그러면 할머니도 그때에 노래랑 많이 불렀댔습니까? 강덕이: 아이고 정말 많이 불렀댔어요. 김연갑: 그러면 아리랑도 불렀고 밀양아리랑도 불렀댔습니까? 강덕이: 아리랑이야 제일 많이 불렀댔지요. 밀양아리랑도 그렇고. 밀양군과 합천군이 서로 있대여 있고 또 집단이주도 함께 왔으니 고향에서 있을 때도 그렇고 또 이곳에 와서도 그렇고 밀양아리랑을 많이 불렀댔어요. 리광평: 할머니, 그럼 저하고 함께 밀양아리랑을 불러 봅시다. 강덕이와 리광평이 밀양아리랑을 부릅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님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아리아리랑 스리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강덕이: 야, 이 노래를 많이 불렀댔어요. 그런데 내가 부르는 밀양아리랑은 방금 부른 것보다 가사 틀려요. 이 가사는 고모님과 어머니가 많이 부르던 가사래요. 그래서 내가 그걸 기억하고 있지요. 김연갑: 그러면 이곳에서 해방이 나기전부터 밀양아리랑을 불렀단 말씀이군요. 강덕이: 그거야 당연하지요. 해방전부터 불렀다니깐요. 김연갑: 그러면 할머님의 부모님들이 부르던 노래가사대로 불러 보세요. 강덕이: 그러면 부를게요. "이것 보소, 저것 보소 뭘 보란 말이요 신작로 복판의 대갈보 보소. 아리아리랑 스리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김연갑: 이 가사는 제가 한국에서나 밀양에서 들어본적이 없는 독특한 가사입니다. 이건 이곳에서만 불러진 가사입니다. 리광평: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 별미입니다. 김연갑: 할머니께서 노래도 잘 부르시고 기억력도 대단하십니다. 젊었을 때는 명창이였겠습니다. 이전에 이 노래를 록음한 적이 있어요? 강덕이: 그때 어디에 록음기가 있었겠어요? 김연갑: 아니 이 마을로 취재를 왔던 사람들이 록음하셨는가 하는 말입니다. 강덕이: 이 노래가사로 된건 록음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처음입니다. 리광평: 2018년 한국 대구의 EBS방속국의 국장 김영봉이란 PD가 강덕이와 권유세가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을 비디오촬영을 하였댔습니다. 김연갑: 아이참, 정말로 소중한 이야기를 하셨고 뜻 깊은 밀양아리랑을 불렀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 밀양아리랑은 집단이주민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불러졌다는 유력한 증거로 됩니다. 밀양아리랑을 이곳에서 불렀다는 생동한 증거물을 찾게되였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는 우리 예상밖의 성과입니다. 정말로 소중한 증거를 얻었습니다. 리광평: 저는 이 할머니를 1988년부터 기록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줄곧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 할머님은 제가 만나서부터 농악대에 들어서 북을 치거나 장고를 치는걸 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래도 잘 불렀답니다. 김연갑: 할아버지도 이 밀양아리랑을 불렀습니까? 강덕이: 나의 령감은 춤을 추거나 악기를 다루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생산대에서 늘 회계사업을 하니깐 그런 일을 할 여가가 없었어요. 하지만 노래는 참 잘 불렀어요. 정말로 아까운 분이였어요. 십여년간 생산대 회계를 하였지요. 회계를 잘하여 상장도 탄 것이 있었는데 어디에 들어갔는지 찾을 방법이 없습니다. 리광평: 제가 이들 부부한테 여러번 권고를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자기나 자기집에서 겪어왔던 실제적인 일들을, 가정에 생겼던 일들을 글로 적어서 이 세상에 남겨놓으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2018년에 이분의 남편 권유세께서 친히 반년동안의 정력을 들여 1만2천여 글자나 되는 《안도현 명월진 신툰촌 력사재료 참고서》를 친히 썼댔습니다. 그리고는 나의 손을 꼭 잡고서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였습니다. "리관장, 내가 리관장의 부탁대로 없는 재간이지만 이 신툰촌력사재료 참고서를 썼소. 그러니 리관장께서 보시고 다시 수개도 하고 보충도 하여 앞으로 책에 실리도록 하여주오. 이것이 나의 최후의 소망이요. 꼭 부탁드리요.”라고 하셨댔습니다. 하여 나는 그 글을 본 다음 수개도 하였고 원본을 돌려준 다음 더 내용들을 보충하라고 맡겼댔습니다. 그러자 권로인은 다시 다른 책에 옮겨 뻬끼면서 또 다른 내용도 보충하였습니다. 나는 그걸 다시 수정하고 타자를 하여 로인님들께 드렸습니다. 지금 그 내용과 원본들을 제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으며 앞으로 책이 출판될 때 꼭 이 글을 넣으려고 합니다. 김연갑: 그 원본과 글들을 다 보관하고 있다구요? 참 의미있는 큰일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훌륭한 력사증거물로 될 겁니다. 정말로 소중한 기록들입니다. 할머니께서 글을 쓸수 있어요? 강덕이: 쓸수 있어요. 한자든 조선글이든 다 쓸수 있습니다. 김연갑: 이 노트에 할머님의 이름과 주소, 방금 부른 밀양아리랑노래의 가사를 적어주세요. 강덕이: (글을 쓰신다.) 아이고, 이젠 손도 말을 잘 안들어요! 김연갑: 그 정도면 대단한거지요. 년세가 85세인데요. 확실히 이곳에서 밀양아리랑을 불렀댔군요. 그리고 할머님 신분증도 촬영합시다. (강덕이께서 신분증을 내놓자 내가 사진기로 복사하였고 할머니께서 쓴 글도 사진기로 복사하였다.) 김연갑: 할머님의 기억력도 대단하십니다. 대갈보, 대갈보란 무슨 뜻인가요? 강덕이: 대갈보? 우리는 뚱뚱한 사람들을 대갈보라고 합니다. 김연갑: 그러면 할머니께서 병원에 얼마 동안 계셔야 된대요? 강덕이: 지금은 한 단락치료기간이랍니다. 치료를 해보고 만약 났지 않으면 다음 치료계단으로 넘어간답니다. 오늘까지 사흘간 치료를 하였는데 좀 나은것 같기도 합니다. 김연갑: 건강하시여서 리광평선생님한테 이야기를 다 하시십시요. 그러면 그걸 연변이나 한국 합천군과 밀양군에도 다 알려지게 될겁니다. 기억을 더듬어서 생각이 나면 전화를 통해서라도 수시로 이야기해 주세요. 강덕이: 리선생님이 물어보면 제가 대답할수 있어요. 김연갑: 리선생님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리광평: 최근에 제가 연변텔레비죤방송국 PD와 합작하여 이들 부부가 2018년 8월에 결혼 60주년 기념행사인 회혼례를 치르던 장면들로 조선족민속전문프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김연갑: 참 좋은 일들을 많이 하시고 있네요. 할머니께서 건강하셔서 리선생님한테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 주세요. 강덕이: 내가 집에 있었더라면 반가운 귀빈들에게 때시걱이라도 끓여줄 텐데 참 미안합니다. 더욱이 병원까지 찾아와 주시니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네, 부탁대로 할게요. 김연갑: 건강하십시요. 다음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올게요. 치료를 잘 받으세요. 뜨거운 악수를 나누면서 우리들은 아쉬운대로 석별의 인사를 올렸다. 병원에서 나오니 오후 세시 반이 가까워졌다. 하여 우리는 택시를 타고 명원구 시내의 길가에 펼쳐져 있는 장마당으로 다녀갔다. 거기서 송이버섯 3송이와 땅콩, 해바라기씨, 수박 등을 샀다. 그리고 명월구 공공버스역에 다녀가 공공버스를 타고 연길에 돌아왔다. 연길기차역에 다녀가 물어보니 이젠 이곳에선 려객기차를 탈수 없으니 연길서역 고속철도역에 가야 한단다. 하여 우리는 16선 공공버스를 타고 직접 연길서역에 이르러 13일 오전 8시 19분 연길—단동 고속렬차 표를 샀다. 호텔부근 부산돌솥밥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저녁 8시 반이 되였다. 나는 래일 아침 7시에 연길서역에서 그들을 만나 이틀간에 찍은 사진과 비디오를 메모리에 담아 드리고 또 나의 선물로 참깨를 드리기로 약속하였다. 나는 택시를 타고 룡정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6시 반에 연길서역에 도착하였다. 김연갑선생측도 7시 10분이 되자 연길서역에 도착하였다. 나는 약속대로 그동안 답사 사진을 찍은 메모리와 참깨를 드렸다. 단동행 고속렬차 출발시간이 오라지 않기에 그들은 다투어 검표를 마치고 대합실로 들어갔다. 나는 16선 버스를 타고 아리랑축구공원 북측역에서 내려 '연길아리랑축구공원' 간판들과 공원 모습들, 신체단련을 하는 사람들을 명심하여 기록하였다. 이 사진은 메일로 김연갑선생님한테 보내드릴 준비를 마치였다. 나는 다시 16선 버스를 타고 연길 모아산에 도착하였다가 룡정버스를 타고 룡정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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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아리랑제 확장성 확인, 제9회 경산아리랑제2007년부터 이어 온 경산아리랑제, 지난 24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남매지 공원 특설무대에서 진행되어 시민의 큰 환호를 받았다. 특히 메인 행사인 ‘fail in love 경산 & 아리랑’에 반응이 컸는데, 구성이 다채로운데다, 출연자들의 기량이 높았다. 특히 경산아리랑보존회의 ‘나무하는 소리’와 ‘지게목발 소리’가 작품성이 매우 높았다. 방아타령 "에헤루야 방아야/에헤루야 방아로다 어절사콩콩 찧는 방아/언제나 다 찧고 마실갈꼬 (후렴) 이 방아야 독도구방아야/저 방아야 나무도구방아 나무절구 주걱소리/알각달각 장단치면 시어머니 잔소리방아/며느리는 눈치방아로다" 맷돌질 소리 "맷돌아 돌아라 빨리빨리 돌아라 얼른얼른 해놓고서 얼른얼른 해놓고서 다른일도 해야되지 다른일도 해야되지 고달프고 힘겹지만 고달프고 힘겹지만 어서 두부를 만들자 어서두부를 만들자 돌아돌아 맷돌아 어서빨리 돌아라 빨리돌아 맷―돌아 빨리빨리 돌아라 맷돌아 맷돌아 빨리돌아 이 콩을 돌아서 동생을 줘 맷돌 맷돌 맷돌아 어서빨리 돌아라 맷돌아 맷돌아 빨리돌아 이콩을 돌아서 시누이줘 맷돌 맷돌 맷돌아 빨리빨리 돌아라" 지난해 자인 숲에서 개최된 제8회 경산아리랑제는 경연대회와 본 공연의 장소가 각기 달라 혼선을 빗기도 했는데, 이번에 남매지 공연으로 장소를 옮겨 주제 공연으로 유도하는 집중력이 높았다. 장소를 옮기면서 청중의 눈과 귀를 무대로 향하는 효과를 얻은 것이다. 오후 1시에 시작된 제7회 경산아리랑가창대회’는 예선에 통과 된 15팀 중 영상 심사 결과 6팀이 결선에 올라 현장에서 경연을 벌였다. 참가자가 적은 편이었지만 전국의 국악인들에게 경산아리랑을 알리는 효과는 거두었다고 본다. 이어진 '전국학생 겨레노래 아리랑 부르기 대회’도 예선은 영상심사인데 ,3명 이상이 참가하는 팀만이 출전할 수 있다. 예선에서 선정된 최종 6팀(서울, 경기, 대구, 경북 등)이 무대에서 경연을 벌였다. 학생 대상은 첫 시행인데다 3명 이상의 팀제로 참가 자격을 두어 참가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내년에는 홍보에 더 힘써야 할 듯하다. 대상에는 '사할린아리랑'을 부른 사할린 4세 학생들팀이 수상을 했다. 세 번째 행사가 흥미로웠다. ‘경산 &아리랑 박사 이벤트’로 아리랑과 경산아리랑의 이해를 넓히려는 의도로 처음 마련된 행사인데, 전국에서 첫 시행이었다. 문제 범위를 행사장에 비치된 홍보물 내용을 퀴즈화 한 것으로 아리랑의 위상(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지정 등), 경산아리랑의 이해(언제부터 불렸는가, 축제는 몇 회인가?), 경산시의 이해(시화, 시조 등 상징 문제), 경산 지역 축제(경산대추축제, 단오제, 갓바위축제 등) 15항을 제시 채점자 순위로 선정했다. 시민 참여형의 신선한 소재로 타 지역에서도 벤치마킹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 다양한 이벤트들이 나름의 의미를 갖고 동시 진행 되었다. 앞으로 고정된 장소, 고정된 날로 특정되면 독립 주제 축제로의 입지가 확립될 것으로 확인 되었다. 사라져 가는 영남에서 전래되는 방아타령, 맷돌질소리,나물노래, 나무하러가는소리, 지게목발소리, 댕기노래, 물레소리, 어부사,밭매는소리, 상여소리, 화전노래, 지점소리, 칭칭이소리를 한자리에서 전통의 실생활이 생생하게 재현되는 퍼포먼스와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영남인의 심성이 담긴 영남 전래민요를 배치하고, 경산아리랑을 셔플댄스에 담아 조선팝으로 특화 시킨 기획의도가 제대로 관객들의 가슴에 전달되었다. 인사말에서 배경숙 대표는 "매년 6월 24일 하루는 남매지 공원 ‘경산아리랑의 잔치날’로 확정되어 경산만의 축제를 펼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하였다. 김연갑 이사장은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와 함께 한 축사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기여한 경산아리랑은 8회까지는 배경숙 이사장의 열정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이제 남매지 공원에 자리 잡은 내년 10회부터는 경산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마지막 휘날레를 경산아리랑을 조선팝(K-Pop) 장르로 확산 시킨 기획 의도는 대성공이라고 본다. 지난해 러시아 동포들에게도 크게 환영을 받은 장르이다. 소리를 기본으로 춤과 연기력까지 더해진 무대는 10분 짜리 뮤직컬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러한 성공적 공연의 첫번째는 보존회 회원들의 기량이 남다르게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20여 년 보존회 결성 이후부터 가족처럼 모두 함께 해온 성과라고 본다. 휘날레가 끝나자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앵콜을 외쳤다. 아리랑 후렴을 따라 부르면서 흥얼거리면서 아쉬워했다. 경산아리랑 가사와 로고가 박힌 부채와 수건을 받아서 펴보면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고 하면서 어깨를 들썩들썩거리면서 돌아갔다..... 경산아리랑 "남매지 얽힌 전설 오누이 눈물인가 남성현 높은 고개 보슬비가 흩날리네 남천강 푸른 물결 말없이 흘러가고 나그네 잠긴 설움 옛 추억도 떠-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가네" 경산아리랑이 내내 입속에 맴돈다. 한편 경산의 명물 '남매지'는 경상북도 경산 시내에 자리한 저수지이다. 남매지라는 이름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조선시대 때 부모를 잃은 가난한 오누이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오빠가 한양으로 떠난 사이 여동생은 심보 고약한 빚쟁이의 첩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여동생이 저수지에 몸을 던졌고, 이 소식을 들은 오빠도 함께 자결하면서 이들 오누이가 목숨을 잃은 저수지 이름이 '남매지'가 되었다고 한다. 비극적인 전설과 달리 지금의 남매지는 경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이자 도심 야경 명소로 사랑받는 데이트 코스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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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간 한국 사찰음식 인기...유럽인 500명 '순삭' 시식한국의 사찰음식이 브뤼셀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벨기에 한국문화원은 지난 20일 브뤼셀 시청에서 현지 언론인 80여명을 초청해 한국 사찰음식 체험행사를 연 데 이어 23일 유럽연합과 브뤼셀 주재 외교단 500여명을 대상으로 시식행사를 개최한다.이날 행사는 경기도 이천 감은사 주지이자 마하연사찰음식연구원 원장인 우관 스님이 마련했다. 강남 봉은사 사찰음식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우관스님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사찰음식 전문가. 뉴욕, 스페인, 헝가리, 영국 등에 초청되어 한국 사찰음식을 소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영문 사찰음식 레시피북을 펴내기도 했다.첫날 행사가 열린 브뤼셀 시청은 벨기에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그랑플라스 한복판에 자리잡은 명소. 1455년 건립되어 600여년 역사를 가진 중세 벨기에의 대표적 건축물로 평가되는 이곳의 고딕홀(Gothic Hall)에서 식재료 전시와 함께 20여 가지의 음식이 선보였다.이날 참석자들에게 제공된 사찰음식은 모두 20여 가지. 치자콩밥, 유부 된장국, 토마토비빔면, 오이장아찌, 방아꽃부각, 두부강정, 삼색 나물 등 밥, 국과 함께 다양한 반찬이 등장했다. 된장 등 장류 3가지, 말린제피잎, 도토리 등 양념류 15가지, 명이 등 장아찌류 7가지, 연근부각 등 부각류 6가지, 곤드레 등의 나물, 채소 등 50여 가지 다양한 식재료도 선을 보였다. 한국의 식재료와 함께 노랑파프리카 백김치, 오이장아찌 등 현지 재료로 요리된 음식도 등장해 참석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올리비에 아리퐁 씨는 "한국의 불교문화에서 비롯된 사찰음식을 맛볼 수 있어 매우 즐겁다”며 "시각적 즐거움뿐만 아니라 맛도 뛰어난 건강한 음식”이라 평가했다. 당일 마련된 음식이 모두 소진될 정도로 참석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브뤼셀의 한국대사관저 야외행사장에서 열리는 사찰음식 행사는 한국과 벨기에 수교 120주년을 맞아 마련된 국경일 리셉션의 주요 프로그램의 하나. 유럽의 수도인 브뤼셀 주재 외교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다. 유럽연합(EU)과 나토(NATO) 등 브뤼셀 소재 국제기구의 외교관, 현지에 주재하고 있는 외교단, 벨기에 루드빈 드돈더(Ludivine Dedonder) 국방장관 등 500여명이 참석한다.윤순구 대사는 "당초 예상한 참석자 수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참여의사를 밝혔다”고 소개하며 "한국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과 함께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우관 스님은 두 행사에 이어 오는 25일 브뤼셀 부르케르 광장에서 개최되는 ‘한국문화의 날’ 행사에서 사찰음식 시식행사를 열고, 월우에상피에르 문화센터에서 사찰음식 강연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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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말한다] '정선아리랑의 사회문화적 이해'저자: 박관수(민속연구가) 이 책은 정선아리랑에 담긴 사회문화적 모습을 채록하고자 했다. 기존의 입장과 달리 가사만을 채록하지 않았다. 문학적인 입장에서만 정선아리랑을 접하려고 하지 않았고, 정선아리랑의 존재양상을 다각도로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구자의 입장에서만 소리를 대하지 않았고, 소리들이 전승하는 그 자체를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정선 사람들의 삶과 함께 존재하는 정선아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가사를 채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구나 그 가사의 존재를 연구자의 입장에서만 해석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정선아리랑은 본래 가창자들의 삶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창자들은 각자 나름대로 자신이 부르는 소리의 단어나 구절,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있다. 이를 ‘향유의미’라고 부를 수 있다. 그 향유의미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그 의미의 다름은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존재가치가 있다. 가창자들은 정선아리랑을 ‘지어서 부른다’고 말한다. 모든 가창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각자 부르고 싶은 대로 가사를 만들어 부른다. 자신이 부르는 가사가 다른 사람이 부르는 가사와 동일하더라도, ‘지어서 부른다’고 말한다. 그런 가사를 선택해서 부른 것도 지어서 부른 것에 포함된다. 자신의 삶과 관련된 소리를 부르면, 그것이 바로 ‘지어서 부르는’ 것이 된다. 이러한 드러냄은 자유로움이 바탕을 이룬다. 그러니까 ‘지어서 부른다’는 것은 가창자가 소리를 부를 때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가창자들은 곡조도 마음대로 부른다. 동일한 가사인데도 사람들마다 부르는 곡조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높은 음으로 내지르면서 소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낮은 소리로 부른다. 동일한 사람이 불러도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와 젓가락으로 소반 장단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가 다르다. 나물을 뜯으며 건넛산에서 나무를 하는 총각이 들으라는 소리와, 해가 너웃너웃 넘어갈 때 밭에서 부르는 소리는 같을 수가 없다. 정선아리랑은 고정된 틀에 자신의 소리를 맞춰가며 부르는 소리가 아니다. 상황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부르고 저렇게도 부르는 소리가 정선아리랑이다. 남녀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회적 관습으로 이를 제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 삶에서 사회적 금기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남녀 간에 육체적인 성적인 만남도 있었고, 정신적인 연애도 있었다. 이러한 가사에는 남녀 간의 만남도 담겨 있지만, 과거 사회의 모습도 담겨 있다. 정선아리랑은 구전되었다. 그러다가 일제시대에 들어 일본 노래에 그 자리를 조금씩 내줬다. 나아가 ‘노랫가락’, ‘창부타령’, ‘청춘가’ 등은 물론, 유행가에 자리를 내줬다. 이러한 노래들은 주로 전축이나 라디오를 통해 유행이 되었고, 주막에서도 많이 불렸다. 그러다 보니, 정선아리랑은 부르지 못하고 유행가만을 부르기도 했다. 8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정선아리랑을 부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선아리랑은 그와 같은 문화를 접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통해 전승이 되었다. 산골에서 밭만 맸던 노인들,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노인들을 통해서나마 과거의 소리가 전승되었다. 그러니까 해방 이후가 될 즈음에는 정선아리랑은 가늘게 명맥을 유지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선군에서는 정선아리랑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정선아리랑제’를 통해 정선 사람들은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이 정선아리랑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예능보유자 4명이 전수관에서 소리를 가르치고, 전수조교들은 여러 마을 노인회관등에 가서 소리를 가르치고, 장날에는 소리를 하면서 정선 사람들이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정선아리랑에 담긴 향유의미, 소리를 부를 때 일어나는 가창자들 간의 역동, 소리에 담긴 사회문화적 함의 등을 아는 분들이 드물다. 80세 중반 정도는 되어야 그런 말씀을 해 줄 수 있다. 70대들도 가사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몸소 체험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이 드신 분들이 세상을 뜨신다. 정선 구석구석을 좀 더 다녀야겠다. 외롭더라도 갈 길을 가야겠다. 이 책은 정선아리랑에 담긴 사회문화적 모습을 채록하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만을 채록하지 않았다. 문학적인 입장에서만 정선아리랑을 접하려고 하지 않았고, 정선아리랑의 존재양상을 다각도로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구자의 입장에서만 소리를 대하지 않았고, 소리들이 전승하는 그 자체를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다음은 「정선아리랑의 사회문화적 이해」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 소리와 일상생활의 연관성 이해 정선아리랑은 가창자들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이 ‘소리’는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존재한다. 사람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부르는 가요와는 다르다. 노래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없다. 정선아리랑은, 소리를 부르는 그들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정선 사람들이 정선아리랑을 ‘신세타령’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신들의 삶의 처지를 한탄하는 정도만으로 그 의미를 한정할 수는 없다. ‘신세’는 일상생활과 연관지어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정선아리랑은 밭을 매면서도 부른다. 나물을 뜯으러 가서도 부른다. 모를 심으면서도 부르고, 짐을 매면서도 부른다. 나무를 하러 올라갈 때 작대기로 지게목발을 두드리면서도 부른다. 주막에서 소반장단을 치면서도 부른다. 우물에 물을 길러가서도 부른다. 부엌에서 밥을 하면서 부르기도 한다. 시어머니에게 얻어맞고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서도 부른다. 남편에게 얻어맞고 힘든 삶을 노래하기도 한다. 마실돌이를 하면서 즐거워 부르기도 한다.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모여 놀 때 그들에게 밤참을 해 주면서 옆에서 듣고 배우기도 한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다가 배우기도 한다. 옆집 총각을 생각하면서도 부른다. 이웃집 여인을 생각하면서도 부른다. 시집을 간 뒤에 자신이 좋아하던 남자 친구를 그리워하면서도 부른다. 잔칫집에 가서도 부른다. 호미씻이를 하면서도 부른다. 이처럼 정선아리랑은 삶의 일부다. 2. 가사의 향유의미 이해 정선 사람들의 삶과 함께 존재하는 정선아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가사를 채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구나 그 가사의 존재를 연구자의 입장에서만 해석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정선아리랑은 본래 가창자들의 삶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창자들은 각자 나름대로 자신이 부르는 소리의 단어나 구절,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있다. 이를 ‘향유의미’라고 부를 수 있다. 그 향유의미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그 의미의 다름은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존재가치가 있다. 정선 사람들은 서로의 소리가 다름을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의 소리가 나와 다르다고 공박하지 않는다. ‘향유의미’가 서로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다름을 수용한다. 다른 사람의 삶이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듯이, 소리의 다름을 받아들인다. 다음 가사를 보자. 시어머니 산소를 까투리봉에 썼더니 지집아새끼 낳는쪽쪽 콩밭골로 긴다 위 소리에서 ‘까투리봉’은 암꿩의 형상을 닮은 봉우리라고 가창자들은 말한다. 대부분의 가창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일부 가창자들은 ‘까투리봉’이라는 가사 대신에 ‘거친 봉’이라고 불러야 된다고도 말한다. ‘까투리봉’을 ‘팔풍받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콩밭골로 긴다.”라는 가사는 여자 아이들이 콩밭골에 들어가 연애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가창자는 여자 아이들이 크면, 일을 하기 위해 콩밭골에 들어간다고도 말한다. 어떤 사람은 ‘콩밭골’은 ‘공알’을 의미한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가창자에 따라서는 제2행을 "우리 삼동세 팔난봉이 난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의 소리를 두고 각 가사의 조합이 다르기도 하지만, 그 향유의미가 다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창자들은 그 다름을 배척하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용인하면서, 소리를 즐기기도 하지만 소리가 불리는 상황도 즐긴다. 3. 소리의 자유로움 이해 가창자들은 정선아리랑을 ‘지어서 부른다’고 말한다. 모든 가창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각자 부르고 싶은 대로 가사를 만들어 부른다. 자신이 부르는 가사가 다른 사람이 부르는 가사와 동일하더라도, ‘지어서 부른다’고 말한다. 그런 가사를 선택해서 부른 것도 지어서 부른 것에 포함된다. 그러니까 ‘지어서’는 소리를 개인적으로 창작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관련된 소리를 부르면, 그것이 바로 ‘지어서 부르는’ 것이 된다.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소리에 실어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소리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드러냄은 자유로움이 바탕을 이룬다. 그러니까 ‘지어서 부른다’는 것은 가창자가 소리를 부를 때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가창자들이 정선아리랑을 통해 자유로움을 즐기는 것은 가사만을 마음대로 불러서가 아니다. 곡조도 마음대로 부른다. 동일한 가사인데도 사람들마다 부르는 곡조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높은 음으로 내지르면서 소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낮은 소리로 부른다. 동일한 사람이 불러도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와 젓가락으로 소반 장단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는 다르다. 나물을 뜯으며 건넛산에서 나무를 하는 총각이 들으라는 소리와, 해가 너웃너웃 넘어갈 때 밭에서 부르는 소리는 같을 수 없다. 정선아리랑은 고정된 틀에 자신의 소리를 맞춰가며 부르는 소리가 아니다. 상황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부르고 저렇게도 부르는 소리가 정선아리랑이다. 4. 소리의 사회적 모습 이해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다. 가창자들 모두 이런 말을 한다. 남녀는 12살 정도가 되면, 만남이 금지된다. 과거의 사회적 관습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를 지키도록 강요한다. 가창자 대부분이 이를 지켰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녀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회적 관습으로 이를 제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 삶에서 사회적 금기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남녀 간에 육체적인 성적인 만남도 있었고, 정신적인 연애도 있었다. 아래 소리가 그러한 경우를 드러낸다. 간난이아버지 질떠나면서 잘뒀다달라 했는데 이웃총각 구구한사정에 잘뒀다 주지못했네 한질담너메 두질담너메 꼴비는에 저그대 눈치만 있거시거든 내손에외받어 잡숴요 이러한 가사에는 남녀간의 만남도 담겨 있지만, 과거 사회의 모습도 담겨 있다. 과거에는 딸자식을 이름 대신에 ‘간난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걸어서 다녔기 때문에 길을 떠나면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조그마한 담 너머에서 꼴을 비는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오이에 담아 건네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집안에 건네줄 게 없으니, 울에서 자라는 오이라도 따서 자신의 마음을 담는 것이다. 둥둥재말랑 맷둔재말랑 새밭파지말구 당신하구 나하구야 화전놀이갑시다 위 소리를 부르는 사람은 ‘둥둥재’나 ‘맷둔재’가 정선에 있는 재 이름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다른 가창자들이 부르는 대로 불렀기 때문이다. 단지 ‘말랑’이라는 단어 때문에 높은 재라는 사실 정도밖에 모른다. 하지만, ‘새밭’이라는 단어는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는 화전을 말한다. 화전은 나무를 불태워 만들기 때문에 거름을 주지 않아도 곡식이 잘 자란다고 한다. 화전을 할 때의 고달픔도 얘기한다. 새밭을 만드는 방식도 말하고, 새밭에는 서숙을 뿌리기도 하지만, 조를 뿌르는 것이 좋다는 말도 한다. 조는 씨앗에 비해 소출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를 심은 새밭을 맬 때는 다른 곡식을 심은 밭을 맬 때보다 힘은 많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새밭을 ‘새조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밭은 몇 년 정도를 일구다가 묵밭을 만든다고도 말한다. 둥둥 두만아 새밭파지말고 대화방림 멋다리로 들병장사가세 제1행은 자신의 마을에 사는 두만이라는 사람에게 말하는 형태로 가사를 바꾸었다. 두만이는 실명이라고 한다. 그는 성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가사는 그를 놀리는 모습을 띠고 있다. 그래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가사는 두만이처럼 열심히 일을 하지 말고 대화, 방림, 멋다리에 가서 들병장사를 하자고 말하고 권하고 있다. 보따리장사나 두부장사보다는 술장사를 하는 것이 돈 벌기에 가장 손쉬웠다고 말한다. 이 가사는 용탄리나 가수리 인근에서 채록된다. 정선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화나 방림을 모른다. 대화나 방림에는 술집이 많다. 원주에서 정선이나 강릉을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거쳐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다. 그래서 술집이 많았고, 장사도 잘됐다. 이처럼 정선아리랑 가사에는 과거 사회의 모습이 응축되어 있다. 5. 소리의 문화적 모습 이해 정선아리랑은 구전되었다. 그러다가 일제 시대에 들어 일본 노래에 그 자리를 조금씩 내줬다. 나아가 ‘노랫가락’, ‘창부타령’, ‘청춘가’ 등은 물론, 유행가에 자리를 내줬다. 이러한 노래들은 주로 전축이나 라디오를 통해 유행이 되었고, 주막에서도 많이 불렸다. 그러다 보니, 정선아리랑은 부르지 못하고 유행가만을 부르기도 했다. 8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정선아리랑을 부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선아리랑은 그와 같은 문화를 접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통해 전승이 되었다. 산골에서 밭만 맸던 노인들,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노인들을 통해서나마 과거의 소리가 전승되었다. 그러니까 해방 이후가 될 즈음에는 정선아리랑은 가늘게 명맥을 유지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선군에서는 정선아리랑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정선아리랑제’를 통해 정선 사람들은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이 정선아리랑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예능보유자 4명이 전수관에서 소리를 가르치고, 전수조교들은 여러 마을 노인회관등에 가서 소리를 가르치고, 장날에는 소리를 하면서 정선 사람들이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정선아리랑을 채록하는 동안 여러 모로 도와주신 가창자들이 고맙다. 집에 찾아가도 커피를 타 주시면서 다양한 질문에 답변을 해 주시는 분들이 고맙다. 10여 차례 찾아가도 짜증을 안 내신 분들이 고맙다. 한 마디라도 더 일러주시려고 했던 분들이 고맙다. 정선군청 군수님, 아리랑 계장님이 고맙다. 정선문화원 원장님, 사무국장님이 고맙다. 정선아리랑에 담긴 향유의미, 소리를 부를 때 일어나는 가창자들 간의 역동, 소리에 담긴 사회문화적 함의 등을 아는 분들이 드물다. 80세 중반 정도는 되어야 그런 말씀을 해 줄 수 있다. 70대들도 가사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몸소 체험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이 드신 분들이 세상을 뜨신다. 정선 구석구석을 좀 더 다녀야겠다. 외롭더라도 갈 길을 가야겠다. *책을 필요로 하시는 독자게서는 정선문화원(033 562 5471)으로 연락하시면 무료로 보내드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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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한가위, 그 풍요로움을 위한 향연 2003년 09월 10일 - 09월 14일▲ 일시 : 2003년 09월 10일 - 09월 14일 ▲ 장소 : 남산골 한옥마을 ▲ 주최 : 서울시 ▲ 주관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문의 : 남산골 한옥마을(2266-6937) 1. 한가위 먹거리 체험 가. 예쁜 송편 만들기 - 일 시 : 9월 10일(수) ~ 11일(목) 12:00 - 17:00 - 장 소 : 김춘영 가옥 - 대 상 : 외국인 및 어린이 - 전통가옥 마당의 평상위에서 송편을 빚어보고 가마솥에 넣어 자신이 만든 송편을 시식해 본다. 나. 전통주 제작 시연 - 일 시 : 9월 10일(수) ~ 14일(일) 13:00 - 17:00 - 장 소 : 공동마당 - 시 연 : 서울시 무형문화재 권희자 (삼해약주), 한국전통주 연구소 황금심 (진도홍주, 동동주, 홍주 3종) - 민속주 제작과정 시연 및 시음 다. 팔도 민속주 판매 및 시음행사 - 일 시 : 9월 10일(수) ~ 14일(일) 11:00 - 19:00 - 장 소 : 공동마당 - 참가업체 - 포천막걸리, 안성 토속주, 계명주 3개 업체 직영 부스 설치 - 판매주류 : 문배주, 안동소주, 한주, 추성주, 홍주, 백일주, 소곡주, 금산 인삼주, - 복분자술 등 20여종의 유명 민속주 염가 판매 라. 한과 만들기 시연 및 시식행사 - 일 시 : 9월 10일(수) ~ 14일(일) 11:00 - 19:00 - 장 소 : 공동마당 - 시 연 : 이 인숙 (향토음식 전문가) - 전통한과 제작 전과정 시연 및 관람객 시식 마. 떡뫼 치기 체험 - 일 시 : 9월 10일(수) ~ 14일(일) 13:00 - 19:00 - 장 소 : 공동마당 - 전문가의 떡뫼치기 실연과 함께 관람객들의 떡뫼치기 체험 실시 2. 강연 행사 가. 차례상 차리기 강좌 - 기 간 : 9월 10일(수) ~ 11일(목) - 시 간 : 13시, 15시 1일 2회 강연 - 강연자 : 이승관 (성균관 집례위원장) - 한가위 차례상 진설법 및 전통예법 강연 나. 예절 강좌 - 일 시 : 9월 11일(목) ~ 12일(금) - 시 간 : 14시, 16시 1일 2회 강연 - 한복 입는법, 절하는 방법 강연 (강사: 여성유도회 강사) 3. 부대 행사 가. 민속놀이 체험장 - 기 간 : 9월 10일(수) ~ 14일(일) - 장 소 : 천우각 광장 - 널뛰기, 제기차기, 윳놀이, 투호등 전통민속놀이 체험 나. 생활문화 체험장 - 기 간 : 9월 10일(수) ~ 14일(일) - 장 소 : 김춘영 가옥 및 공동마당 - 두부만들기, 새끼꼬기, 맷돌 돌리기, 떡메찧기, 다듬이질하기등 체험 다. 먹거리 장터 운영 - 기 간 : 9월 10일(수) ~ 14일(일) - 장 소 : 공동마당 - 떡, 한과, 부침개, 엿등의 전통음식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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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기획 『어린이국악뮤지컬 "호랑이를 만난 놀부"』 10. 28ㆍ일시 : 2009년 10월 28일(수) 10시 30분 ㆍ장소 : 양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ㆍ티켓 : 8000원 ㆍ문의 : (02)2654-6854 ○ 작품 소개 국악놀이 는 우리 전래동화에 판소리, 민요, 탈춤을 가미하여 아이들이 보다 다양한 장르의 국악과 친해질 수 있도록 구성된 공연입니다. 실감나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극의 재미를 더해주는 소품,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켜 줄 작은 인형극 등을 통하여 어린 관객들은 옛날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또한,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닌, 우리 소리의 장단을 재미있게 따라하고 신나게 두들겨 보는 시간은 어린이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게 됩니다. ○ 국악 놀이극 근래에 들어 우리의 전통음악과 문화를 어린 시절부터 접하게 하는 일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유아기에서부터 다양한 국악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국악’과 어린이들이 보다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바로 보고, 듣고, 만지고, 움직이고, 표현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경험 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또한, 어린이의 본능적인 놀이 활동은 예술적 감수성, 그리고 지능만이 지적 능력과 언어 능력을 끊임없이 개발시킵니다. 국악놀이극은 고유의 음악과 정서를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놀이를 통한 창작 활동까지 유도하는 어린이를 위한 체험형 국악공연입니다. 산 속에 살던 호랑이가 환경 개발에 밀려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먹이감을 찾다가 나쁜 짓만 하고 다니는 놀부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놀부를 찾아 나선다. 욕심 많은 놀부는 동생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준 보답으로 금은보화가 가득한 박을 얻게 되자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다. 마침내 놀부는 제비에게서 황금박통을 얻었지만 그 속에서 금은보화는 커녕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나와 놀부를 꾸짖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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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국악관현악·실내악축제 9 월 21 일일 시 : 2008 년 9 월 21 일 (일) 17 시 장 소 : 국립국악원 예악당 문 의 : 02- 744-8060 제4회 국악관현악 · 실내악축제 전국의 국악단체들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음악어법을 찾아간다는 공통과제를 가지고 미래의 국악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벌판을 만들고자 함이며, 국악관현악이라는 새로운 음악문화를 만들어가는 순수 목적의 창작연주회로서 우리 전통음악의 우수성과 전통 예술의 위상을 세우고, 창조적인 문화역량을 높이는데 기여하기 위함이다. ▶ 공연내용 및 출연 * 경상북도립국악단 / 지휘 : 김만석 타악합주 "북의 합주" / 사물구성 : 박정덕, 안무 : 김희경 관현악 "동천" / 작곡 : 이준호 가야금협주곡 " 신 관동별곡" (초연) / 작곡 : 백대웅, 편곡 : 김만석 창작판소리 협주곡 "노총각 거시기歌" / 소리·작창 : 나상일 ㅡ 휴 식 ㅡ 전주시립국악단 / 지휘 : 신용문 국악칸타타 "어머니" / 작곡 : 김삼곤, 대본 : 김정수 희미해진 어머니 / 도창(1) / 나라 없는 땅에서 혼인 가약 / 행방이다 해방 / 이 눈보라 그치면 / 도창(2) 세상이 어디 / 사부곡 / 너희는 나의 희망 / 내 두부가 생명이다 / 대학생 우리 아들 / 서울오신 어머니 / 칠순 날 / 불! 불! 불이야 / 도창(3) 돌아가신 어머니 /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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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부산전국창작국악관현악축제 9월 27일 ~ 29일일 시 : 2006년 9월 27일 ~ 29일 늦은 7시30분 장 소 :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 연주곡목 해설 ** 첫째 날 - 9. 27(수) 【1부】진주시립전통예술단 (지휘/ 이정필) ■ 국악관현악 ‘비상(飛翔)’ 작곡/ 이지영 ■ 25현 가야금(고쟁古箏)을 위한 국악관현악 협주곡 ‘절영의 전설’ 작곡/ 강봉천 고쟁/ 주 전 ■ 창작판소리 ‘논개’ 작곡/ 백성기 판소리/ 박성희 ■ 소금(적자) 협주곡 ‘길’ 작곡/ 이준호 적자/ 후장청 둘째 날 - 9. 28(목) 【1부】안산시립국악단 (지휘/ 김재영) ■ 관현악 ‘아리랑’ 작곡/ 최성원, 편곡/ 이인원 ■ 무용 등과 함께 하는 북한음악 ‘새 봄과 종달이, 키 춤(물동이 춤)’ • 새 봄과 종달이 ■ 바리톤과 국악관현악 작곡/ 박위철 바리톤/ 서정학 • 오페라 중 피가로의 아리아 【2부】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지휘/ 박호성) ■ 창과 관현악을 위한 ‘아리랑’ 작곡/ 채치성 창/ 박성희, 정선희 ■ 창작관현악 ‘축제의 향연’ 작곡/ 김 선 셋째 날 - 9. 29(금) 【1부】전주시립국악단 (지휘/ 신용문) ■ 국악칸타타 ‘어머니시여’ 대본/ 김정수, 작곡/ 김삼곤 소리/ 김민영, 최진희, 조용균 소프라노/ 고은영 합창/ 전주시립합창단(합창지휘 :구천) - 작 품 구 성 - 1. 희미해진 어머니 ------------ 소리/ 김영성, 합창/ 전주시립합창단 2. 도창 ----------------------------------------- 소리/ 최진희 3. 불! 불! 불이야 -------------------------- 합창/ 전주시립합창단 4. 칠순 날 - 소리/김민영,김영성, 소프라노/고은영, 합창/전주시립합창단 5. 나라 없는 땅에서 ------------ 소리/ 김민영, 합창/ 전주시립합창단 6. 해방이다 해방 - 소리/김민영,김영성, 소프라노/고은영, 합창/전주시립합창단 7. 도창(세상이 어디) ----------------------------- 소리/ 최진희 8. 이 눈보라 그치면 ----------- 소리/ 김영성, 합창/ 전주시립합창단 9. 사부곡 --------------------------------------- 소리/ 김민영 10. 내 두부가 생명이다 --------------------- 합창/ 전주시립합창단 11. 너희는 나의 희망 ----------- 소리/ 김민영, 합창/ 전주시립합창단 12. 대학생 우리 아들 ---------- 소리/ 김민영, 합창/ 전주시립합창단 13. 서울오신 어머니 ----------- 소리/ 김민영, 합창/ 전주시립합창단 14. 도창(돌아가신 어머니) ------------------------- 소리/ 최진희 15. 어머니 - 소리/김민영,김영성, 소프라노/고은영, 합창/전주시립합창단 【2부】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지휘/ 박호성) ■ 창작관현악 ‘해운대 위에 잔디’ 작곡/ 이승곤 ■ 국악관현악 "설장고 놀음을 위한 모리" 작곡/ 이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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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학에는 무얼하며 보낼까?뜨거운 태양의 계절, 여름입니다. 그리고 우리 어린이들이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다가왔네요. 여름방학이 되면 부모님들과 함께 바닷가로 여행도 떠나고....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찾아가 꽃과 나무, 곤충들을 만나기도 하지요. 또 선생님께서 내주신 방학숙제도 해야 하구요. 그렇지만 의미있는 흥겨운 우리 음악과 친숙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더욱 좋겠지요. 3천여명 대상 여름방학강좌 개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홍남)은 여름방학을 맞아 2004년 7월 20일부터 9월 3일까지 장애인 어린이 저소득층 성인 등 약 3천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여름방학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통해 소중한 추억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8월 12일, 13일 양일간 초등학생이 포함된 가족 160명은 충남 서산시 음암면과 지곡면을 찾아가 박첨지놀이 공연을 관람하고 시골 할아버지들과 함께 직접 두부도 만들고 대나무 물총 만들기 및 새끼 꼬기 등 좀처럼 접하기 힘든 우리 전통 마을의 민속 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8월 16일부터 18일까지 또 한 차례 현장답사인 ''어린이 민속교실''이 진행된다. 초등학교 4-6학년 160여명은 경기도 양주로 현장학습을 가서 대나무 소리통, 물총, 제기 등의 전래놀이를 체험하고 양주별산대놀이도 구경한다. "세대간 공통분모를 찾아라!" 핵가족화로 인해 점점 가족간의 교류와 대화가 단절되면서 상실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우리 전통 의식주 생활을 알아보고 관련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엄마랑 나랑 민속박물관 여행'', 평소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었던 조부모와 손자 손녀가 이날 만큼은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부채, 색지장자 등 전통 민속품을 제작해보며 도란도란 얘기도 해보는 ''할머니 손녀 공예교실''은 세대간 공통분모를 찾는데 일조할 것이다. 이외에도 학기 중에는 단체 예약만 가능하기 때문에 관심은 있지만 교육신청을 하지 못했던 ''우리문화 한아름'', ''박물관에서 배우는 사회교과'', ''풍물체험교실''도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이 가족들에도 개별 접수가 가능하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이에 따라 지승공예 민화 솟대 봉산탈춤 등을 배우는 ''우리문화 한아름'', 직접 양파껍질을 이용해 천연염색을 해보는 ''박물관에서 배우는 사회교과'', 신명나는 전통악기를 통한 ''풍물체험교실'' 등에 참여하는 가족들은 저마다 소중한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세대별 계층별 맞춤 교육프로그램을 여름방학 뿐만 아니라 연중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들이 단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장애인, 저소득층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들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민속문화 보급에도 더욱더 앞장서 보다 많은 국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문의 : 02) 3704-3114 정선아리랑학교 `아리랑학교 캠프' 정선아리랑학교(교장:진용선)는 제14회 여름 산골마을 아리랑학교 캠프를 오는 27~29일 마련한다. 산골마을 아리랑학교는 정선아리랑학교에서 지난 10년 동안 여름방학 중 시행해 온 초등학생들만을 위한 산골 아리랑 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캠프는 어린이들에게 산골마을의 정서와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통문화유산인 아리랑을 통해 정체성을 심어주는 내용으로 지난해까지 수료자가 1,089명에 달한다. 참가대상과 모집인원은 초등학생으로 45명 선착순 마감한다. 참가비는 숙식비 교육비 티셔츠비 보험가입비를 포함, 10만원이며 정선지역 학생은 5만원. 교육내용은 정선아리랑배우기를 비롯 아리랑노랫말만들기 정선아리랑티어링 봉숭아물들이기 감자떡만들기 옥수수따기 모깃불 태우기 등이다. 문의 : 033) 378-0694, 7856. 전통한옥체험 캠프 전주전통문화센터에서 여름방학을 맞아 전통한옥체험 캠프를 운영한다. 전주한옥마을의 다양한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들과 연계한 이번 캠프는 전통문화 교육체험을 통한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와 전주천의 자연생태의 체험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기회가 될 것이다. 캠프일정은 오는 8월 1(일)~2(월), 1박 2일이며 대상은 초등학생 선착순 35명이다. 참가비는 개인당 6만원(1인기준)이며 접수는 7월 20(화) 오후 6시까지이며 참가자 준비물은 필기도구, 샌들, 세면도구, 수건, 모자, 썬크림, 여벌 옷(우천시 - 비옷, 우산), 점퍼 등이다. 문의 : 063) 280-7030 지리산 어린이 여름학교 두체례 (사)한생명 부설 지리산생명문화교육원가 주최하고 실상사 사부대중공동체가 후원하는 지리산 어린이 여름학교가 오는 26일부터 5박 6일, 8월 9일부터 5박6일 일정으로 마련된다. 여름학교는 자연체험놀이, 공동체놀이, 전래놀이, 생태문화체험 등으로 꾸려질 이번 여름학교에서는 1차에서는 전국의 초등학생 3 6학년 35명을 대상으로, 둘째 마당에는 발달장애아동 5명이 포함된 초등학생 장애 비장애 통합교육으로 치러진다. 한생명 지리산생명문화교육원(옛 실상사 귀농전문학교), 실상사 주변에서 열리게 되는 이번 여름학교의 참가신청은 9일부터 이달 28일까지며 학년별, 성별 선착순으로 접수된다. 한생명 홈페이지(www.hanlife.or.kr)에서 신청양식을 내려 받아 자필로 쓰신 후 우편접수하면 된다. 문의 : 063) 636-5388, 5399 청학동 청운서당은 다도와 요가 체험 (주)Tour Plex에서 기획한 지리산 청학동 청운서당은 다도와 요가를 통한 인성교육, 사자소학과 채근담을 통한 한문교육 등을 준비하고 있다.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문, 무, 예를 기본으로 하는 전인교육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2박 3일 과정으로 7만원이며 1주 과정은 14만5000원이다. . 문의 : 055) 882-7400. 한자교육, 예절교육 및 민속놀이 체험 충남 공주 도령서당은 7, 8월에 방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단전호흡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한자교육, 예절교육 및 민속놀이를 배우고 묵언 명상으로 일과가 끝난다. 비용은 1주일에 16만원이다. 문의 : 041) 854-3391. 영남대'서당체험 교실' 영남대는 7월 26일~8월 6일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4차례에 걸쳐 '서당체험 교실'을 연다. 참가자들은 대학 안 민속원과 구계서원에서 합숙하며 식사 및 생활예절부터 붓글씨, 국악연주, 민요,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 등을 배우고 씨름과 투호, 제기차기 등 각종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다. 수강료는 1인당 5만원이다. 문의 : 053) 81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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